신라인 이렇게 살았다 "고대 방패, 미니어처 배, 멧돼지뼈, 씨앗, 토기 등 출토"

(경주=국제뉴스) 김진태 기자 = 신라 왕궁터인 사적 제16호 경주 월성을 둘러싸고 있는 해자에서 1600년 전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이 출토됐다.

▲ (사진=김진태 기자) 월성 해자에서 출토된 나무 방패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2일 오전 경주 월성 발굴현장에서 4~5세기경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방패와 목재 모형 배, 멧돼지뼈, 씨앗, 토기 등을 언론에 공개했다.

▲ (사진=김진태 기자) 경주 월성 발굴현장에서 유물 발굴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경주문화재연구소

월성 해자 발굴 현장에서 개최된 이날 간담회에서 연구소는 출토 유물과 발굴 과정을 설명했다.

▲ (사진=김진태 기자) 월성 해자에서 출토된 나무 모형배

경주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 추진한 경주 월성 정밀발굴조사 중 해자 내부에서 의례(종교나 풍습 따위)에 사용된 가장 이른 시기 최고(最古)의 축소 모형(미니어처) 목재 배 1점, 4~5세기에 제작된 가장 온전한 형태의 실물 방패(防牌) 2점, 소규모 부대 지휘관 또는 군(郡)을 다스리는 지방관인 당주(幢主)와 곡물이 언급된 문서 목간 1점 등을 발굴했다. 

▲ (사진=김진태 기자) 경주 월성 발굴현장에서 출토 유물을 설명하고 있는 경주문화재연구소

이번에 공개된 축소 모형 목재 배는 현재까지 국내에서 확인된 축소 모형 배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통나무배보다 발전된 형태로 실제 배와 같이 선수(뱃머리)와 선미(배꼬리)가 분명하게 표현된 준구조선(準構造船-통나무배에서 구조선(構造船)으로 발전하는 중간단계의 선박 형태)으로 크기는 약 40cm이다. 

▲ (사진=김진태 기자) 월성 해자에서 출토된 나무 배

특히 배의 형태를 정교하게 모방하고 공을 들여 만들었는데, 안팎에서 불에 그슬리거나 탄 흔적이 확인됐다. 다른 유적에서 출토된 배의 사례로 보아 이번에 출토된 유물도 의례용으로 추정된다. 배는 약 5년생의 잣나무류로 제작된 것으로 보이며, 제작 연대는 4세기에서 5세기 초(350~367년 또는 380~424년)로 산출된다. 

축소 모형 배의 경우 일본에서는 500여점이 출토됐고 활발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데, 이번에 나온 월성의 모형 배는 일본의 시즈오카현 야마노하나 유적에서 출토된 고분시대 중기(5세기)의 모형 배와 선수·선미의 표현방식, 현측판(상부 구조물이 연결되는 부분)의 표현 방법 등이 매우 유사하다. 앞으로 양국의 배 만드는 방법과 기술의 이동 등 상호 영향관계에 대한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사진=김진태 기자) 월성 해자에서 출토된 나무 방패

방패는 손잡이가 있는 형태로 발견된 최초의 사례이며, 가장 온전한 실물 자료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2점 모두 수혈해자의 최하층에서 출토됐는데, 하나는 손잡이가 있고, 하나는 없는 형태이다. 크기는 각각 가로·세로가 14.4×73cm와 26.3×95.9cm이며, 두께는 1cm와 1.2cm이다. 표면에는 날카로운 도구로 기하학적인 밑그림을 그리고 붉은색·검은색으로 채색했다.

▲ (사진=김진태 기자) 월성 해자에서 출토된 나무방패

또 일정한 간격의 구멍은 실과 같은 재료로 단단히 엮었던 흔적으로 보인다. 실제 방어용 무기로 사용했거나, 수변 의례 시 의장용(儀裝用)으로 세워 사용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몸체는 둘 다 잣나무류(소나무속 연송류), 손잡이는 느티나무 수종이고, 손잡이가 있는 방패 제작연대는 340~419년이며, 손잡이가 없는 방패는 340~411년으로 측정한다. 

▲ (사진=김진태 기자) 월성 해자에서 출토된 3면 목간

목간은 3면 전체에 묵서가 확인됐다. 주요 내용은 곡물과 관련된 사건을 당주(幢主)가 보고하거나 받은 것이다. 6세기 금석문(국보 제198호 ‘단양 신라 적성비’)에 나오는 지방관의 명칭인 당주가 목간에서 등장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 (사진=김진태 기자) 경주 월성 발굴현장에서 출토 유물을 설명하고 있는 경주문화재연구소

또한 벼, 조, 피, 콩 등의 곡물이 차례로 등장하고 그 부피를 일(壹), 삼(參), 팔(捌)과 같은 갖은자로 표현했다. 앞서 안압지(현재 동궁과 월지) 목간(7~8세기)에서도 갖은자(같은 뜻을 가진 한자보다 획이 많은 글자, 금액이나 수량에 숫자 변경을 막기 위해 사용)가 확인됐는데, 신라의 갖은자 사용 문화가 통일 이전부터 있었음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 (사진=김진태 기자) 월성 해자에서 출토된 토기

월성해자 내부에서는 이 외에도 호안(護岸) 목제 구조물과 다양한 유물들이 확인됐다. 목제 구조물은 해자 호안(기슭) 흙이 유실되는 것을 방지하는 시설로 수혈해자 북벽에 조성했다. 수혈해자 바닥을 파서 1.5m 간격으로 나무기둥(木柱)을 세우고 그 사이에는 판재(板材)로 연결했다. 최대 높이 3m인 나무기둥과 최대 7단의 판재가 남아 있어, 대규모 토목 공사가 삼국통일 이전에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신라의 목제 구조물 전체가 확인된 최초의 사례로, 당시의 목재 가공 기술을 복원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 (사진=김진태 기자) 월성 해자에서 출토된 재배식물

해자 내부 흙을 1㎜이하의 고운 체질로 걸러 총 63종의 신라의 씨앗과 열매도 확보했는데, 국내 발굴조사 상 가장 많은 수량이다.

▲ (사진=김진태 기자) 월성 해자에서 출토된 야생식물

그리고 해자 주변의 넓은 범위에 분포했던 식물자료를 알아보기 위해 화분분석(퇴적물 속 옛 꽃가루나 포자 추출, 종류와 비율 등을 조사하여 과거 식물군락 변천, 기후환경 등 추정)을 실시해 물 위의 가시연꽃, 물속에 살았던 수생식물(水生植物), 해자 외곽 소하천(발천 撥川)변의 느티나무 군락(群落) 등을 파악했다. 추후 경관 복원의 근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 (사진=김진태 기자) 월성 해자에서 출토된 수생·습생식물

이 밖에 물의 흐름·깊이·수질을 알려주는 당시의 규조(珪藻, 물에 사는 식물성 플랑크톤)를 분석해 해자에 담겼던 물의 정보도 분석하고 있다. 앞으로 이러한 결과를 토대로 신라인들이 가시연꽃이 가득 핀 해자를 보며 걷고, 느티나무숲에서 휴식을 취했을 5세기 무렵 신라 왕궁의 풍경을 복원할 수 있을 것이다. 

해자 내부에서 확인된 6개월 전후의 어린 멧돼지뼈 26개체는 신라인들이 어린개체를 식용(食用) 혹은 의례용으로 선호했던 것을 시사해준다.

▲ (사진=김진태 기자) 월성 해자에서 출토된 맷돼지 뼈

또한 삼국 시대 신라 왕경에서 최초로 확인됐던 곰뼈는 현재까지 15점(최소 3개체)이 나왔는데, 앞발과 발꿈치 등 특정 부위를 집중적으로 활용한 것이 특징적이다.

▲ (사진=김진태 기자) 월성 해자에서 출토된 수정

이 외에도 2~3세기부터 분묘 유적에서 다수 출토되는 수정(水晶)도 가공되지 않은 원석상태로 출토했고, 통일기 이후에 조성돼 사용된 3호 석축해자의 바닥 지점에서는 단조철부(鍛造鐵斧, 쇠도끼) 36점을 확인했다. 철부는 실제 사용 흔적이 있었으며, 석축해자 축조과정 혹은 의례 등과 관련해 한꺼번에 폐기된 것으로 판단된다. 

경주 월성 발굴조사(22만2,000㎡)는 올해로 5년차이며, 지금은 성벽(A지구)과 건물지(C지구), 해자를 조사 중이다. 

▲ (사진=김진태 기자) 월성 발굴 현장

이제까지 월성 C지구에서는 건물지를 비롯한 내부 공간 활용 방식과 삼국~통일신라 시대에 걸친 층위별 유구 조성 양상이 확인됐다. 월성 해자는 물을 담아 성 안팎을 구분하면서 방어나 조경(造景)의 기능을 했으며, 다양한 의례가 이뤄진 특별한 공간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사진=김진태 기자) 월성 해자 발굴현장

방패와 목제 배 등 이번에 공개되는 유물까지 포함해 지금까지 월성의 발굴조사를 통해 출토된 유물들은 5일부터 6월2일까지 서울 한성백제박물관에서 열리는 ‘한성에서 만나는 신라 월성’ 특별전에서 만나볼 수 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와 한성백제박물관이 지난 2월 체결한 학술교류 협약을 바탕으로 월성 발굴조사 성과를 널리 알리기 위한 자리이다. 

이종훈 경주문화재연구소장은 “국내외 연구기관과의 협력 관계를 바탕으로 경주 월성 학술조사에 있어서 철저한 고증과 학제 간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며 “정기적인 조사성과 공개, 대국민 현장설명회,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 등을 통해 학술조사의 새로운 장을 열어 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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