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국제뉴스) 변성재 기자= 세계 종합격투기(MMA) 역사에서 여성들이 경쟁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후반 부터였다.

초기의 여성 MMA는 남성 중심의 종합격투기 대회에 일회성 이벤트로 시작되었지만, 2000년대 초반 스맥걸(Smackgirl)과 같은 여성MMA 전문 단체가 설립되며 본격적인 역사의 포문을 열었다. 

이후 스트라이크포스, 인빅타 FC, 딥 쥬얼스(전신: 스맥걸) 등의 대회를 중심으로 명맥을 이어가던 여성 MMA는 2012년 UFC의 여성부 도입을 계기로 꽃을 피웠다. 특히 여성MMA 대중화의 중심이었던 론다 로우지의 활약이 눈부셨다. 스트라이크포스 시절부터 이어진 그녀와 미샤 테이트의 라이벌구도, 데뷔 후 8경기 연속 암바 연승행진, 차원이 다른 경기력으로 MMA계를 떠들석하게 했고, UFC의 PPV기록을 여러차례 갈아치웠다.

남성 MMA와는 다른 예쁘고 섹시한 여성들의 대결 자체에 주목했던 이전의 시선과 달리, 탄탄한 경기력과 화끈한 승부로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받기 시작하였다. 론다 로우지 시대 이후에도 홀리 홈, 아만다 누네즈, 요안나 예드제칙, 로즈 나마유나스, 발렌티나 셰브첸코 등 실력과 스타성을 겸비한 선수들이 UFC 무대에 등장했고 체급도 점차 다양하게 도입되며 대중화가 가속되고 있다. 남성MMA 못지 않은 화제를 만들고 있는 현대 여성MMA이다. 

 

세계적 추세에 발 맞추어 대한민국의 여성 MMA도 최근 몇 년간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고 있다. 특히 아톰급의 최강자 함서희와 김지연, 전찬미 등의 전, 현직 UFC파이터들을 중심으로 대중의 이목을 끌고있으며 로드FC의 더블엑스 대회와 TFC, AFC 등 국내 단체의 여성부 경기도 대중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사실 과거의 대한민국 여성MMA는 황무지에 가까운 시장이었다. 입식에는 전연실, 임수정등의 스타들이 간혹 등장하기도 했으나 대부분의 여성 MMA선수들은 대회의 부재, 생활고 등을 이유로 꿈을 펼쳐보지 못한채 MMA계를 떠났다. 

이러한 어려운 환경에서 탄생한 독보적인 1세대 MMA 스타가 바로 함서희다. 2007년 일본의 DEEP을 통해 프로무대에 데뷔한 함서희는 2013년까지 일본무대에서 활약하며 챔피언이 되었다. 국내에는 대회도 없었고 훈련파트너도 찾기 어려운 악조건 이었지만, 끊임없는 노력과 타고난 재능으로 정상에 오른 그녀다.

지난 2018년 12월 15일 열린 로드FC 051 더블엑스 대회에서는  한국 여성MMA 역사의 새로운 변곡점으로 평가받고 있는 경기가 펼쳐졌다. 이날 메인이벤트였던 "함서희 VS 박정은 戰" 은 한 대회의 메인이벤트와 타이틀전이라는 의미를 넘어 대한민국 여성MMA 역사의 한 획을 긋는 경기였다. 이 경기는 대한민국 MMA 역사상 최초로 국내 여성격투가끼리 벨트를 놓고 경쟁한 경기였다. 이 시합에서 두 선수는 대한민국 여성MMA가 한단계 성장했음을 증명하는 좋은 경기내용을 보여주었다. 

경기 전, 전문가와 팬들의 대부분은 함서희의 압승을 예상했다. 그간 함서희가 싸워온 세계적인 선수들에 비하면 22살, 8전의 전적을 쌓아온 박정은의 커리어가 그리 화려하지 않았고, 그녀가 그래플링 부분에 약점을 갖고 있는 선수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과 팬들은 박정은의 경쾌한 스탭과 타격 스피드에 주목하기도 했다. 

뚜껑을 열자 경기는 함서희쪽으로 기울었다. 함서희는 경기 내내 "역시 함서희"라는 느낌을 주는 노련하고 안정적인 경기 운영을 했고, 박정은은 스탭과 스피드를 살리며 타격으로 경기를 풀고자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경기는 예상대로 흘러갔고 함서희는 여전희 굳건한 챔피언으로 남았지만, 이 경기는 타이틀전 다운 팽팽한 긴장감을 주었으며 박정은은 분전했다. 

격투 스포츠에서 언제 하나 걸릴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은 경기의 몰입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중 하나이다. 함서희와 박정은의 타이틀전은 두 여성 파이터가 3라운드 내내 긴장감을 유지하며, 수준 높게 경쟁할 수 있었다는 것 만으로도 큰 의미를 둘 수 있을 것 같다. 2, 3년 전만 하더라도 국내에서는 함서희의 상대를 찾을 수 없었다. 그녀의 상대편에는 늘 외국인이 서 있었다. 이제는 한국에 경쟁력 있는 여성파이터들이 등장하고 있다. 무기를 갖고 있는 강자들이 많아지고 있다. 박정은, 심유리, 전찬미, 서예담, 서지연 등 재능있는 신예들의 경기를 보면 대한민국 여성격투기가 발전하고 있음이 피부로 느껴진다.

 

일부 팬들은 월드클래스에는 도달하지 못한 우리 여성선수들의 경기력에 대해 비난하고 때론 폄하하기도 한다. 확실한 사실은 대한민국 여성MMA는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그것을 증명해준 경기가 함서희, 박정은戰 이었고, 앞으로 우린 이런 경기들을 더욱 자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선수는 스스로 단련하고, 동료간의 경쟁을 통해 성장하기도 하지만 팬들의 응원과 사랑을 받으며 그것을 동기부여로 발전하기도 한다. 열악하고 무관심한 환경속에서도 꿋꿋하게 성장하며 세계적인 선수로 자리잡은 함서희같은 선구자도 있지만, 우리 여성격투가들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팬들의 지지도 분명 필요하다.

한국 여성MMA가 팬들의 관심 속에 안정적으로 성장해 나가길 바라며, 선수들도 팬들의 관심에 보답하고자 하는 멋진 마음을 갖고 경쟁했으면 한다. 2019년, 한국 여성MMA 역사의 또 다른 변곡점을 만날 수 있길 기대한다.

글: 조원상 격투 전문 칼럼 니스트

사진: ROAD FC(로드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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