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준법지원센터 주무관 권병훈

▲ 천안준법지원센터 주무관 권병훈

아버지는 영화광이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무렵에는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테이프를 자주 빌리셔서 어머니에게 적잖이 눈총을 받으셨던 기억이 난다.

며칠 전 주말에 모처럼 집에서 휴식을 취하며 아버지와 함께 ‘두 얼굴의 사나이’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인간의 초인적인 힘에 대하여 연구하던 배너 박사가 사고를 당해 우연히 초인적인 힘을 가지게 되었고, 이후 헐크로 변하여 악당을 물리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다는 흥미진진한 내용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나의 직업인 보호관찰관 역시 어쩌면 ‘두 얼굴의 사나이’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새내기 공무원으로 발령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지명수배자 B씨가 천안시 ○○아파트에서 거주하고 있다는 신고를 받았다. 당시 B씨는 도로교통법위반(음주운전)으로 대전법원에서 보호관찰 2년과 사회봉사명령 120시간, 수강명령 40시간 처분을 받았으나, 약 5개월 넘게 잠적하여 보호관찰준수사항 위반으로 지명수배가 된 상태였다.

구인집행하기 위해 나는 직장동료 3명과 함께 밤 8시가 넘어 아파트를 찾았다.

B씨는 현관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 거실에서 일행 5명과 삼겹살을 구워 술을 마시고 있었다.

B씨의 얼굴을 확인한 후 인권 보호차원에서 잠시 밖으로 나오라고 하였으나, B씨는 완강히 거부하며 "술을 먹고 운전은 하였지만 사람은 다치지 않았다."며 되레 소리를 질렀다. 건축현장에서 도배 일을 마치는 대로 천안준법지원센터에 찾아 갈 테니 아파트에서 당장 나가라고 했다. 심지어 함께 술을 마시던 일행들을 믿고 직장 선배의 이마를 머리로 들이받고 발로 찬 다음 심한 욕을 하면서 "자꾸 괴롭히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까지 했다.

영화 속에서나 있을 법한 상황이 현실이 되자 머릿속이 하얘지고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 망설이고 있는데, 직장선배가 미란다원칙을 고지하면서 수갑을 꺼내들었다. 이를 보자 어느새 나도 완강하게 저항하는 B씨를 제압하기 위해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마치 헐크처럼 직장동료들과 합세하였고, 수갑을 채워 구인집행한 후 보호관찰법 위반으로 천안교도소에 유치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헐크가 아닌 모습으로 사람들을 대한 적도 있다.

Y씨에게는 B씨와는 전혀 다른 발걸음으로 다가간 것 같다. Y씨는 내가 발령을 받고 처음 담당하게 된 대상자였다.

Y씨는 건축현장에서 알게 된 인부와 일을 마치고 술을 먹던 중 싸움을 하여 법원으로부터 보호관찰 2년과 사회봉사명령 120시간 처분을 받았다.

그는 천안준법지원센터로 처음 신고하러 왔을 때, 글을 전혀 읽을 줄 모르는 문맹인데다가 과거 절도 등 다수의 동종전력으로 교도소에서 생활한 경험이 많아 그런지는 몰라도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신고서를 접수하며 간단한 면담을 실시한 결과 65세의 몸으로 막노동을 하고 있고 결혼하여 1남 1녀의 자녀를 두었으나 가정불화로 배우자와 이혼 후 홀로 살고 있어 관리감독을 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었다.

출석신고를 마치고 서류를 접수한 후 2018년 7월 말경 Y씨가 살고 있는 집을 방문했다. Y씨는 천안시 성환읍내의 전통시장 내에 위치한 작은 월세 방에서 홀로 생활하고 있었다. Y씨는 유난히도 더웠던 올 여름 폭염 속에 벌레가 들끓는 작은 방에서 선풍기도 없이 속옷만 입은 채 방안에 홀로 있다가 보호관찰관을 맞이하게 되어 곤혹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천안준법지원센터 사무실에서 출석신고를 할 때는 말도 많고 깐깐해 보였던 그가, 건축현장의 일감이 많지 않고 사회봉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집에서 쉬고 있다는 푸념을 하며 왼쪽 눈이 보이지 않고 한쪽 귀까지 먹어 막노동하는 것이 쉽지 않아 올 겨울 나기가 걱정된다고 했다. 나는 그의 또 다른 모습을 보자 외면해서는 안 될 힘든 상황에 놓인 이웃으로 느껴졌다.

뜨거운 그 태양이 내리쬐던 여름날,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홀로 외롭게 차가운 겨울 걱정을 하고 있던 대상자의 모습을 계속해서 생각하고 있자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힘으로 이 사람을 도운다면 범죄에 노출되기 쉬운 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현지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Y씨가 더 이상 재범하지 않고 건전한 사회인으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관리감독과 함께 적절한 원호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며칠 후 Y씨와 다시 만나 가정환경, 경제력, 대인관계, 정서상태 등에 대하여 심층면담을 실시했다. 이를 기초로 지도감독 단계 중에서 가장 엄격한 집중보호관찰대상자로 지정하여 월 4회 이상 대면면담을 실시했다. 또한 2018년 10월 중순 경에는 천안시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와 연계하여 주취·정신질환 대상 정신건강증진프로그램에 참가하게 하는 등 지도·감독을 강화했다.

이어 Y씨가 일을 하지 못해 차비가 없다면서 사회봉사명령을 어찌할까 걱정하는 모습을 보고 사회봉사명령 담당자에게 대상자의 상황을 전달하여 주거지 인근의 ○○복지관에서 사회봉사명령을 마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2018년 8월 중순경 천안시 성환읍사무소의 사회복지 공무원과 면담하고 Y씨에 대하여 기초생활수급권과 장애인 등록을 신청하였다.

2018년 11월 초경 Y씨는 조금 더 나은 월세 방으로 주거지를 옮기게 되었다. 새로 이사한 곳을 찾아갔을 때, Y씨는 손자처럼 나이 어린 내게 모자까지 벗으며 허리를 숙이고 인사하였다. 두 달간 밀린 방세를 담당관이 신청해준 긴급생계지원비로 충당하고 기초생활 수급자와 장애인으로 등록되어 한시름 덜었다면서 "나이 60이 넘도록 이렇게 나를 챙겨주었던 사람은 선생님이 처음입니다. 정말 고맙습니다."면서 연신 감사를 표했다.

그럴수록 나는 더욱 진지하고 성실한 면담으로 Y씨에게 다가갔고, 무더운 날씨에 결석 한 번 없이 사회봉사와 각종 교육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지난날의 과오를 반성하고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천안준법지원센터로 발령받은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몇 개월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그동안 보호관찰 업무를 하다가 실수하여 직장선배들에게 꾸중을 들어 의기소침한 적도 있었고, 의외의 기지로 업무를 잘 처리해 칭찬을 들은 적도 있었으나, 새내기 공무원으로서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품고 배우는 자세로 노력하고 있다.

천안준법지원센터에서 근무하는 동안 일반 사회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많이 겪고, 다양한 사람들은 만나게 된 것은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나는 어떤 보호관찰관이 될까?

‘두 얼굴의 사나이’의 주인공 배너 박사처럼 법을 어기는 불량한 보호관찰대상자에게는 엄정한 법 집행관이 되고, 때로는 개선의지가 있는 대상자에게 따뜻한 사회복지사가 되어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는... 나는 그런 보호관찰관이 정말로 되고 싶다.

저작권자 © 국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