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해양경찰서장 총경 박종묵

▲ 군산해양경찰서장 총경 박종묵

제로베이스(zero-base)는 경제에서 출발했지만 이제 사회 전반에서 쓰이는 용어다.

행정에서는 규제를 줄이기 위해 도입한 규제총량제와 규제일몰제를 '제로베이스 방식'이라고도 하지만, 최근에는 '원안에서 재검토'라는 해석으로 가장 많이 사용한다.

그동안 이것저것 다 해봤지만 실효성에 의문이 들 때 '출발점에서 검토하고 대안을 다시 마련해보자'란 뜻이다.

그럼 제로베이스라는 용어가 많이 쓰이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보통 정책을 수립할 때에는 '무엇이 문제인가'를 찾는데서 출발한다. 문제점을 정확하게 알아야 대안을 찾아갈 수 있기 때문에 종합적인 의견을 수렴하고 가장 근본적인 원인까지 파악하려고 노력한다.

이 문제점에 대한 이견은 사실 거의 없다. 상황이 문제로 인식되기까지 이미 많은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안에 대한 이견(異見)이 제로베이스를 끌어들이게 된다.

대책, 대안, 대응책, 방책 등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많은 용어만큼 그 해법도 정책수립자에 따라 수혜자에 따라 방법론에 따라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여러 정책이 수립되고 또 폐지되며 새로운 대안이 마련되고 다시 제로베이스에서 검토되는 것이다.

바다 안전도 마찬가지다. 해양경찰 창설 이래로 해양안전에 대한 무수하게 많은 대책이 만들어지고 현장에 도입됐다.

대형 사고가 발생하면 그 후속대책 뿐만 아니라 중장기적 대안까지 수립돼 언제나 진행형이다.하지만 지난 65년간 변하지 않는 대안이 있다면 안전에 대한 기본 원칙이다.

음주 운항 금지, 과속이 아닌 안전속력 유지, 구명조끼 착용과 같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군가는 지금도 어기고 있는 일들이다.

이 기본 원칙은 참과 거짓의 조건 명제가 아닌 대명제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제로베이스가 끼어들 틈이 없다.

기본 원칙은 가장 어려서 배웠고, 가장 많이 들었고, 가장 실천하기 쉬운 일들이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너무 쉽게 간과하거나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 건 아닌지 돌이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정부와 사회는 이 기본 원칙을 세우고자 많은 비용을 투자하고 홍보에도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이 기본 원칙이 어겨지면 어겨질수록 대안을 찾는 제로베이스를 꺼내든다.

자율이 가장 완벽한 시스템이긴 하지만, 기본 원칙이 제 역할을 못할 때 사회는 규제라는 마지막 카드를 꺼내들게 된다. 레저 활동 금지구역을 만들고 시간을 제약하고 출항 신고 의무와 같은 행정 규제 등이다.

규제가 강할수록 자율은 위축되고 창의와 발전을 가로 막게 되는 사회적 악순환이 되풀이 되지만, 결국 규제란 기본원칙이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기본만 지켜진다면 지금까지의 규제는 모두 제로베이스가 될지 모른다. 기본이 바로 서면 더 이상 규제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규제를 만드는 것도 기본에서 출발하고 이를 없애는 것 역시 기본에 달려있다. 바다 안전에 대한 여러 대안 생겨나고 또 사라지고 행정규제가 생기고 법령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결국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기본 밖에 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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