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국제뉴스) 이형노 기자 = 형법해석에 있어서 피해자의 유책성이 일정한 구성요건 해당성을 배제하는 사유로 작용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허용될 수 없다. 그러나 횡령죄, 배임죄, 사기죄, 장물죄와 같이 구성요건 상 또는 범죄학 상 신뢰관계를 전제로 하는 재산범죄의 경우에는 형법의 단편성 및 보충성의 원칙에서 유래하는 자기책임의 원칙에 따라 피해자가 신임한 신뢰관계가 형법상 ‘보호할 가치 있는 신뢰관계’가 아닌 때에는 당해 재산범죄 구성요건을 제한해석하거나 목적론적으로 축소해석 할 수 있다.

대법원이 불법원인급여물에 대한 횡령죄의 성립을 부정하면서 불법원인급여물에 대한 사기죄의 성립을 긍정하는 것은 ‘보호할 가치 있는 신뢰관계’라는 관점에서 일관성이 있는 입장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신임관계에 의한 위탁을 본질로 하는 횡령죄의 구성요건은 보호할 가치 없는 신뢰관계는 형법적으로 보호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지만, 행위자의 기망행위에 의하여 착오가 야기되고 처분행위를 하게 되는 사기죄에서는 피기망자가 비록 불법원인급여를 하였더라도 이러한 기망행위의 불법성이 피기망자의 과책을 능가하는 것이고 여전히 형법적 보호가치는 인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본범이 위탁한 장물을 보관하던 장물범이 이를 횡령한 때에 추가적으로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 이유는 판례의 해석처럼 횡령행위가 불가벌적 사후행위에 불과해서가 아니라, 본범과 장물범 사이에 존재하는 사실상의 신뢰관계가 형법적으로 보호할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최근 대법원이 부동산실명법의 취지를 존중하여 악의의 계약명의신탁에서 수탁자의 처분행위는 신탁자에 대한 횡령죄을 구성하지 않는다고 판시한 것과 중간생략등기에서 수탁자의 임의처분행위가 횡령죄를 구성하지 않는다고 판시한 것들은 ‘보호할 가치 있는 신뢰관계’라는 관점에서 타당한 판결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에 법무법인 혜안 형사전문센터의 황규련변호사는 “형법의 보충성에 바탕을 둔 ‘보호할 가치 있는 신뢰관계’의 이론은 2자간 명의신탁에 의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하기 때문에 2자간 명의신탁에서도 수탁자의 임의처분행위는 명의신탁자에 대한 횡령죄를 구성하지 않는다고 해석하여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대법원은 “민법 제746조의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하여 급여자가 수익자에 대한 반환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수익자가 기망을 통하여 급여자로 하여금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하는 제물을 제공하도록 하였다면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이는 일견 형법적 보호가치성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 불법원인급여라 하더라도 행위자의 ‘기망행위’가 있었고 이로 인하여 ‘재물의 교부 또는 처분행위’가 있었다면 피기망자의 재산권을 형법적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대법원의 이러한 해석론의 타당성 여부는 불법원인급여물에 대한 사기죄에서 기망자와 피기망자 사이의 신뢰관계가 자기책임의 원칙이라는 관점에서 보호할 가치 있는 신뢰관계인지 여부에 따라 판단할 수 있다.

자기책임의 원칙과 관련하여 사기죄는 피해자의 공동과책이 인정될 수 있는 여지가 항상 존재한다는 구성요건적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피기망자가 ‘착오’를 일으킨 부분을 피기망자의 과책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기죄의 경우는 횡령죄와는 달리 피기망자가 과책으로 불법원인급여를 하였더라도 피기망자의 기망자에 대한 신뢰관계는 보호가치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먼저, 사기죄에서 피기망자의 경신성이나 부주의함 등 객관적으로는 타당해 보이지 않는 행태가 사기죄 구성요건해석에 반영할 수 없는 이유는, 사기죄에는 횡령죄와는 달리 행위자의 ‘기망행위’가 존재한다는 차이점 때문이다. 피기망자는 기망자의 기망행위에 의하여 부적절한 동기를 형성하고 결과적으로 합리적이지 못한 행태를 한 것이다.

합리적인 일반시민이나 경솔한 피해자에게는 착오로 인한 처분행위가 자기 자신의 이익에 반할 수 있음을 인식하자 못하고 기망행의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이 있었다고, 즉 착오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고 인정할 수 없다. 원칙적으로 인간의 욕심과 나약함이 형법적 보호가치성을 부정하게 되는 경과를 가져와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국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