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한글이라는 혁명을 퍼 올리다

▲ 11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세종대왕 즉위 600주년을 기념해 한글창제의 감춰진 이야기를 다룬 소리극 '까막눈의 왕'(사성구 작, 정호붕 연출)을 선보이고 있다.(국제뉴스 = 박종진 기자)

(서울 = 국제뉴스)박종진 기자 = 한글창제의 감춰진 이야기를 다룬 소리극 '까막눈의 왕'(사성구 작, 정호붕 연출)이 더욱 화려하고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찾아왔다.

국립국악원은 세종대왕 즉위 600주년을 기념해 11일부터 14일까지 예악당에서 소리극 '까막눈의 왕'을  선보였다.

이 작품은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세종대왕이 붕어(崩御)하시기 전날, 경복궁 마루 밑에 사는 백성의 원혼인 들풀마마들에게 한글의 창제과정을 한판 연극으로 꾸며 놀아보자고 명하면서 시작한다.

세종대왕과 한글에 대한 작품은 수도 없이 많지만, 이 작품은 백성들의 민요가 세종대왕의 한글창제에 큰 지렛대 역할을 했다는 기발한 상상력으로 극을 신선하고 흥미롭게 이끌어나간다. 

역사적으로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드는 과정은 베일에 쌓여있다.

그 창제과정이 세세히 기록된 공식문헌도 남아있지 않다.

물 긷는 아낙의 노래, 쟁기질 하는 농부의 소리, 민중들의 진솔한 삶을 담은 민요가 한글창제에 기여했으리라는 것 역시 역사기록에 없는 순전히 사성구 작가의 상상이며 픽션이다.

하지만 민중을 위한 글자를 만들면서 대왕이 민중의 노랫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이 오히려 상상할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세종대왕이 스스로 음악을 작곡할 만큼 역대 왕들 중 가장 음악을 사랑한 군주이며, 음악에 대한 집요한 관심을 가졌던 치음치세(治音治世)의 성군임을 감안할 때, '까막눈의 왕'이 그려내는 한글과 민요의 연결고리가 그 개연성을 부여받아 관객들의 고개를 끄덕거리게 할만하다.   

사성구 작가는 "세종대왕은 수천 년 까막눈들의 어두운 강을 처음 밝히신 달이며, 그가 캄캄한 혼돈의 우물에서 맹꽁이처럼 퍼 올린 한글은 우리 민족에게 하늘 열리는 혁명"이라면서 "공기의 소중함처럼 잊고 살던 대왕의 위대함과 한글의 소중함을 이 공연을 통해 되돌아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에 공연된 '까막눈의 왕'은 2012년 공연 버전보다 크게 업그레이드 됐다.
관객들이 극을 보며 지루해할 틈이 없도록 극적 전개는 더 빠르고 타이트해졌다.

마치 우리 민요 아리랑이 펼쳐내는 미학처럼 재미난 해학과 엄숙한 비장함이 고개를 넘나들 듯 한판 구불구불 굽이쳐 확장되도록 구성됐다.

까막눈 백성들을 향한 대왕의 고뇌에 찬 눈물을 고스란히 담아내면서도 따뜻한 웃음과 사랑을 통해 세상을 긍정하는 대왕의 힘을 아름다운 민요와 감동적인 음악으로 펼쳐 보인다.

소리극 '까막눈의 왕'을 위해 전통극 분야의 어벤져스들이 모였다.

절묘한 상상력과 기발한 입담으로 고전과 현대를 아우르는 사성구 작가가 대본을 썼고, 전통에 대한 재해석으로 다양한 작품 활동을 펼치는 정호붕 교수가 연출을, 김성국 작곡가가 법고창신하는 음악을 선보였다.

'적벽'을 성공시킨 김봉순 무용가가 안무를 지휘하며, 박선희 이화여대 교수가 현대적 감각의 의상을 디자인 했고, 뮤지컬 '명성황후'와 '영웅' 등의 무대를 만든 대한민국 무대미술의 거장 박동우 디자이너가 합세했다.

눈은 있으되 글을 읽을 줄 몰라 칠흑 같이 어두운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을 우리는 '까막눈'이라 부른다.

그런 까막눈들의 새까만 마음을 훤히 밝혀주신 '까막눈의 왕' 세종대왕의 눈물겨운 성취를 오롯이 담아내고 있는 이 공연이, 이번에는 눈부시고 화려하게 관객들의 눈과 귀와 마음을 사로잡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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